서울에서 시내버스를 10년 정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버스기사들이 공감하는 애로사항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어보려 합니다. 버스회사 취직을 목표로 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배차간격 준수
가장 힘든 부분. 일반인들은 '매일 같은 길만 다니는거 힘들겠어요.'라고 하지만 그건 별로. 처음 가보는 길이 위험하지 매일 다니면 신호체계와 위험구간, 화장실 위치까지 파악해서 익숙하고 편하다. 그런 익숙한 길임에도 시간에 쫓겨 조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져 사고위험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5분배차로 출발했다고 가정하자. 출근시간이라 차가 점점 늘어나면 앞차가 한 번에 통과한 신호를 나는 두 번만에 통과한다. 다음 정류장에는 신호 하나만큼 탑승객이 늘어나서 또 늦는다. 이런 식으로 7분 10분 15분 지연이 누적되면 승객들은 늦었다고 항의하고 뒷차는 꽁무니에 붙고 배차실에서는 간격을 맞추라고 닦달한다.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식사도 급하게 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사고, 공사등의 이유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교통량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배차간격을 맞추려면 끼어들거나 차선, 신호위반을 해야만 한다. 앞차가 조금 천천히 가주면서 지연된 시간을 나눠가지면 좋지만, 내 코가 석자인지라 본인이 손해를 보면서 동료를 위하는 기사는 드물다.
회사에서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운행을 강조하지만, 배차간격도 맞추라고 요구한다. 배차간격을 맞추려면 교통법규를 위반해야하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사고위험이 높아진다. 모순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기사입장에서는 욕을 좀 먹더라도 사고를 안 내는 게 이익이다.
운행이 끝나고 차고지에 도착해서 기사들이 하는 말은 똑같다. 본인 행동은 정당화하면서 누구 운행매너가 어떻고 누가 빨리가고 늦게 가고 뒷말과 남 탓이 심하다. 그만큼 다들 배차 간격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2. 가해사고와 그 처리과정
피해사고를 내면 회사에서 경위서를 쓰고 주의를 받는 정도이고 별다른 불이익은 없다. 가해사고는 다르다. 12대 중과실, 사망, 다수의 중상자가 발생한 사고의 경우 해고되거나 그와 비슷한 중징계를 받게 된다. 경미한 사고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도록 기사가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사정 좀 봐달라고 애원해야 한다. 사고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회사가 기사에게 그렇게 하라고 압박한다.
때문에 사고가 나면 트라우마 비슷하게 멘털이 나가 일하기가 싫어진다.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무서워서 차를 몰지 못하는 것과 같다.
3. 인사사고(안전사고)의 위험
버스가 움직일때 승객이 다치는 사고는 무조건 운전기사의 책임이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지거나 다쳤다며 돈을 요구하는 승객들도 있다. 기사들 대부분은 이런 경험이 있으며 '수업료'를 냈다고 자조한다. 크게 다치면 보험처리를 하지만 경상일 경우 기사 개인비용으로 몇십만 원 주고 무마하는 편이다. 보험 처리하고 징계받는 것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인사사고로 승객에게 돈을 주고 나면 손님들이 내 돈을 뜯어가는 하이에나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일론 환자들도 문제지만 정말 무서운 건 나이 많은 고령자이다. 잘못 넘어져 척추나 고관절이 잘못되면 회사는 다달이 수백 만원의 치료비를 부담하게 되며, 기사는 치료 비용만큼 징계도 커진다.
4. 동료기사와의 관계
주관적이긴 견해지만 버스업계 종사자들 특히 나이 많은 기사들은 인성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라 설명이 어렵지만 여하튼 그렇다. 배려심이 부족하고 본인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앞차와 뒷차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고 교대자와 사이가 안 좋기도 하다.
아무래도 남들과 협업할 필요가 없고 혼자 일하기 때문에 그런듯 하다. 나만 사고 안 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마인드랄까.
5. 장시간 앉아서 일해야 하는 점
잠깐씩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사무직과는 달리 버스는 계속 앉아있어야 하므로 허리나 무릎질환이 생기기 쉽다. 따로 운동해서 관리해줘야 한다.
6. 화장실 문제
소변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고 회차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급똥인데 평소 다니는 노선에 이용가능한 화장실을 최대한 알아둬야 한다. 여건이 안돼서 바지에 실례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큰 단점이라 하겠다.
7. 민원 문제
요즘은 가히 민원의 시대다. 시민의식 수준이 올라가면서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 약간의 불편을 참지 않고 민원을 제기한다. 민원이 들어오면 기사는 관할 구청에 방문해서 소명해야 한다. 대부분 불친절 민원이다. 난폭운전, 욕설, 무정차, 냉난방 문제 등 민원은 다양한데 내가 문제행동을 안 하면 당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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